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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 마르케스 vs. 바르가스 요사

 

조선일보 2014.4.22.

1970년대 이후 지구촌 문학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이끌었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선봉에 섰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역사와 환상을 넘나드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남미의 현실을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孤獨)'은 25개 언어로 번역돼 5000만부 넘게 팔렸다. 개인적으론 20대 초반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던 소설이다. 바르가스 요사는 정통 리얼리즘 소설에 날카로운 풍자를 곁들이는 솜씨로 이름이 높다. 페루 군대의 위안부 운영을 풍자한 소설 '판탈레온과 위안부들'을 20대 중반에 읽으며 킬킬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1928년생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1936년생 바르가스 요사는 오랫동안 절친한 사이로 지냈다.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1982년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먼저 상을 줬고, 2010년엔 바르가스 요사를 수상자로 호명했다. 둘이 이승에서 맺은 인연은 지난 19일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세상을 뜨면서 끊어졌다. 바르가스 요사는 부음을 듣곤 "그의 작품 덕분에 문학은 폭넓은 독자와 위엄을 얻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애도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바르가스 요사의 우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엔 주먹다짐도 벌어졌다. 1976년 멕시코 시티의 어느 무더운 영화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영화 시사회에 두 사람이 나란히 참석하기로 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먼저 도착해 있다가 바르가스 요사가 나타나자 두 팔을 벌려 "마리오!"라고 반갑게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바르가스 요사는 주먹으로 친구의 얼굴을 갈겨 버렸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왼쪽 눈을 움켜쥔 채 쓰러졌다. 바르가스 요사는 "네가 무슨 낯짝으로 나를 반기느냐"고 외쳤다.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두 사람이 모두 아내를 데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머문 때가 있었다. 바르가스 요사가 스웨덴 여성과 눈이 맞아 아내를 팽개치고 스톡홀름으로 갔다. 그 사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 부부가 바르가스 요사의 아내를 만나 달래기는커녕 이혼을 강력하게 권했다고 한다. 나중에 바르가스 요사가 본처에게 돌아온 뒤 그 사실을 알고 분개해 주먹을 날렸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추정도 있다. 바르가스 요사의 아내가 바람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그녀를 위로했다. 문제는 위로의 방식을 둘러싸고 묘한 소문이 나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르가스 요사가 본처와 재결합한 뒤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응징했다는 설도 있다.

바르가스 요사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결별 배경엔 정치적 갈등도 있었다. 바르가스 요사는 쿠바 혁명을 지지한 좌파 지식인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독재가 심해지자 환멸을 느꼈다. 그는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우파 논객이 됐다. 반면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카스트로를 꾸준히 지지하면서 개인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내가 지난 20년 동안 남몰래 쿠바 정권에 부탁해서 석방시킨 쿠바 작가들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바르가스 요사는 그런 옛 친구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나는 그가 쿠바에 가는 것이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있는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2007년 '백년 동안의 고독' 출간 40주년을 맞아 두 사람은 화해했다. 스페인 왕립 아카데미가 펴낸 '백년 동안의 고독' 40주년 기념판에 바르가스 요사의 글이 실렸다. 그는 '백년 동안의 고독'을 "완벽한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남미 문단에선 "바르가스 요사가 얼음을 깼다. 이것은 좋은 징조"라며 반겼다. 이후 바르가스 요사는 기자들에게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엔 엉터리도 있지만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충분히 그 상을 탈 만했다"고 치켜세웠다. 31년 만에 화해가 이뤄진 결정적 이유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다만 두 사람이 개인적·이념적 차이로 갈라섰지만 결국 문학이 그런 벽을 허물고 소통을 가능케 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200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를 파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우문(愚問)을 던졌더니 그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타자(他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답했다. "나는 황석영의 소설을 읽으면서 황석영의 정신 속에 들어갔고, 그 덕분에 한국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작가들은 질투심이 많다. 자기보다 잘 쓴 동료의 작품을 읽고 나면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 일쑤다. 자기와 스타일이 비슷한 동료는 인색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자기와 세계관이나 문학관이 전혀 다른 동료가 걸작을 발표했다고 인정하게 되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작가들은 동료를 이념적으로 틀렸다고 비난하더라도 문학적으로 다른 것은 존중한다. 흔히 문학을 '자기표현의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은 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글읽기에서 출발한다.

문학은 가장 깊은 공감의 장(場)을 형성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바르가스 요사가 보여준 우정과 결별, 그리고 화해에 이은 영원한 이별은 문학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진 한 편의 드라마다. 그것은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21/20140421028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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