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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벨터벌레에 있는 체첼리언 김나지움

중앙 2013.11.20.

우리 가족에 독일은 특별한 나라다. 남편과 내가 유학한 곳, 그리고 세림이가 태어난 곳이다. 우리 부부는 1998년 독일로 유학 왔다. 둘 다 학사부터 다시 시작해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남편은 박사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난 아직 박사과정(교육학) 중이라 세림이와 독일에 남았다. 세림이는 이곳에서 태어나 유치원, 초등학교, 김나지움까지 계속 다니고 있다.

 지금 사는 빌레펠트 시는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32만5000여 명이다. 한국에선 작은 규모로 보이겠지만, 생긴 지 800년 된 독일에서 20번째로 큰 곳이다. 축구팬이라면 차두리(FC 서울) 선수 때문에 친숙할 지도 모르겠다. 이곳 빌레펠트 시 축구클럽인 DSC 아르미니아에서 2002~2003 시즌을 뛰었기 때문이다.

 독일 학생은 초등학교(4년제)를 졸업하면 상급 학교 세 곳 중 한 곳으로 진학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하는 김나지움, 직업교육을 하는 실업학교, 김나지움과 실업학교의 중간 형태인 종합학교다. 모두 중·고등학교를 통합한 형태다.

 

 김나지움은 5~12학년(주에 따라 13학년)을 운영한다. 실업학교는 주에 따라 5학년부터 10~11학년, 종합학교는 9~10학년까지 교육한다. 김나지움이 아닌 실업학교와 종합학교를 갔다고 대학에 못 가는 건 아니다. 이들 학교 졸업 뒤 대학에 가고 싶다면 김나지움 11~12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다. 또 전문화한 고등 직업교육을 받고 싶으면 전문직업교육 학교로 진학한다. 모두 학비가 무료인 공립학교다.

 이들 학교는 기본적으론 거주지에 따라 배정받는다. 하지만 예체능 교육을 더 강조하거나 면학 분위기가 더 좋다거나 하는 이유로 다른 학교에 지원할 수도 있다. 김나지움은 담임교사 추천서와 4학년 1학기 내신성적만 반영하는데, 성적이 평균 정도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다. 김나지움끼리 큰 차이는 없기 때문에 대부분 거주지 인근으로 진학한다. 세림이는 면학 분위기가 좀 더 좋은 곳을 지원해 들어갔다.

 독일은 공립학교가 90%, 나머지 10%가 사립학교다. 사립학교는 발도로프 학교(독일에서 시작한 대안교육의 일종) 같은 대안학교가 많다. 미국·영국 등의 유명 사립학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예체능 교육이나 숲을 활용한 생태교육을 시키겠다든가, 아니면 자녀가 학습부진아인 경우만 제한적으로 사립학교를 찾는다. 공교육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상급 학교를 선택할 때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잘 드러난다. 독일은 초등학교 4년 동안 담임교사가 바뀌지 않는다. 담임은 4년 동안 학생을 관찰하고 졸업 시점에 어떤 진로가 좋을지 추천한다. 독일 학부모는 교사의 이런 판단을 신뢰해 대부분 추천에 따라 진학한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변화를 싫어하고 오래 사귀어야 마음을 터 놓는 보수적인 독일인의 습성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을 오래 관찰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믿기에 4년 동안 지켜보는 거다. 물론 상급 학교 진학 후 언제든 김나지움에서 실업학교로, 또는 반대로 옮길 수 있지만 실제로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세림이가 다니는 김나지움에는 실업학교에서 오는 학생이 1년에 2~3명 정도다. 과거엔 초등학교 졸업생 중 20~30%만 김나지움에 진학했지만 최근 이 비율이 50% 정도로 늘었다.

 독일 학부모가 공교육을 신뢰하는 이유는 학교의 태도와 교사의 실력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와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놀랄 때가 많다.


독일 빌레펠트시에 있는 체칠리언 김나지움 학교 전경(맨 왼쪽 위 사진). 독일 학교는 모든 수업이 토론식으로 이뤄진다. 칠판을 바라보도록 책상을 일렬로 놓지 않고 학생들이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올 초 세림이 반 한 학생이 독일어 선생님이 특정 아이를 편애한다고 학교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여기까진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 다음 학교의 대응에 놀랐다. 담임교사가 학급회의를 소집한 후 학생들이 해당 독일어 교사의 수업 태도와 방식 등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도록 했다고 한다. 담임교사는 이 결과를 놓고 교장과 상의했고, 9학년(8월에 새 학년이 시작됨)에 올라가면서 독일어 교사를 교체했다. 독일에서 8학년이면 한국 중학교 2학년이다. 한국에서 중2가 교사의 태도와 수업 방식을 평가하고 발언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곳에선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토론 주제다.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의견을 낼 권리가 있고, 학교는 그것에 대해 경청해야 한다는 자세로 임한다.

 학생끼리 싸웠을 때 교사의 해결방식도 흥미롭다. 담임교사는 싸운 학생과 함께 삼자토론을 벌인다.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누구 잘못이 큰지, 대화로 해결할 여지는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학생 스스로 말하도록 요구한다. 심지어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릴 것인지 말 것인지도 학생에게 의견을 묻고 결정하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같다. 이처럼 독일 학교는 모든 일에서 토론과 토의가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이런 전통은 독일 전통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독일은 16개 주가 모인 연방국가다. 여기에 동·서독의 분단과 통일이라는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강한 개인과 합리성을 가르치면서도 연대주의를 강조한다. 어떤 문제라도 드러내놓고 토론하기를 즐긴다. 문제 잘잘못을 따지는 데 국한하지 않고 이처럼 토론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초등학교 수업 45분 중 교사 설명은 단 5분뿐이다. 간략한 개념 설명 뒤엔 40분 내내 교사와 학생 간, 혹은 학생 사이에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다. 이런 수업을 하려니 교실 배치도 한국과 다르다. 독일 공립 초등학교는 책상을 칠판을 향해 일렬로 놓지 않고 5~6명씩 모둠을 만들어 원 모양으로 배치한다. 교사는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수업을 이끈다. 문제를 먼저 푸는 학생도 있고 늦게 푸는 학생도 있다. 교사는 먼저 푼 학생이 같은 모둠의 다른 친구를 돕도록 유도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이렇게 모든 학생이 문제를 풀고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 시간을 준다. 주 교육부에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만 정해진 교과서가 없어 수업교재는 교사가 재량껏 구성한다. 진도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이 충분하게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한다.

 특히 초등학교는 학습 부담을 주지 않고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숙제도 20분 정도 분량이다. 세림이는 2~3분 만에 후딱 해치운 적도 많았다. 그런데 독일 학부모는 그마저도 더 줄여달라고 한다.

 상급 학교인 김나지움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진다. 모든 수업이 토론식이다. 그렇다 보니 교사가 권위로 학생을 제압한다거나 학생을 윽박지르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교실 안에서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모두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다.

 학습량 역시 많지 않다. 김나지움엔 숙제가 법적으로 금지된 날도 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이틀은 보통 때보다 늦은 오후 3~4시에 끝난다. 이날 수업 바로 다음날 같은 과목이 있으면 그 과목은 숙제를 낼 수 없도록 법적으로 금지했다.

 초등학교부터 토론식 수업이니 시험 문제도 다르다. 주요 과목만 지필평가를 치르지만 그나마도 객관식 시험은 없다. 모든 과목에서 논증형 글쓰기를 굉장히 강조한다. 초등학교에선 영어·수학·독일어·사물(한국의 자연) 4과목이 주요 과목이고, 김나지움 10학년까진 영어·수학·독일어·제2외국어·선택과목(세림이 학교에선 스페인어·정보학·식품영양학 중 택 1) 5과목이 주요 과목이다. 김나지움 11학년 이상은 본격적인 대학입시 준비단계인데, 이때는 목표 전공에 따라 선택과목이 더 세분화한다.

 시험 문제를 내는 방식이 독특하다. 딱히 시험 범위가 없다. 시험 문제와 관련한 주제만 알려준다. 예컨대 수학 시험이라면 ‘원’에 대해 보겠다는 식이다. 또 독일어·영어는 ‘논증’이라는 주제 또는 ‘동화’라는 주제로 시험을 보겠다고 테마만 알려준다. 수업에서 토론한 주제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이해했고 다른 사례에 적용해 논증하는 글을 쓸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거다.

 정확한 순위 매기는 데 익숙한 한국 엄마 눈엔 답답해 보일 거다. 하지만 독일 학교는 학생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성적은 등급으로만 부여된다. 1~5 등급까지(최고점 1, 낙제 5) 있지만, 학교나 학부모 모두 3등급 이상만 나오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학습 관련 상담은 4~5등급의 낙제 위험군 학생에게만 집중한다.


※자료=해외교육복지정책연구(2012), 한국교육개발원※주에 따라 김나지움은 12~13학년, 실업학교는 10~11학년, 종합학교·주요학교는 9~10학년까지 운영

 독일에는 낙제와 유급제도가 있다. 또 상급 학교에선 졸업시험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 성적 경쟁을 지양하지만 최소한의 학력 인증은 철저하게 확인한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 경쟁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가는 교육을 표방하는 걸 느낄 수 있다. 공부를 잘한다고 특별히 주목받는 일도, 못한다고 방치되는 일도 없는 것이다. 이런 게 공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학교수업이 이런 식이니 사교육으로 시험을 대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연히 학원도 없다. 예체능을 제외하고는 학습 관련 사교육을 시키는 걸 본 적이 없다. 가끔 과외는 한다. 과외 선생은 같은 반 친구다. 제대로 돈 주고 배우는 거다. 친구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낸 것이니 수고료를 줘야 한다는 논리다. 우리 눈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지극히 합리적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교육을 받으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영어 실력만 봐도 그렇다. 9학년인 지금 자기 생각을 자유자재로 영어로 쓴다. 순수하게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말이다. 교사는 영작에서도 다른 시각을 갖고 그걸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소소한 문법적 실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영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쓰느냐(문법)가 아니라 머릿속 생각을 얼마나 풍요롭게 표현(토론)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니 수업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체육 수업을 강조한다는 것도 독일 교육의 특징이다. 세 사람만 모여도 스포츠 관련 협회를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포츠가 활성화한 나라다. 각 학교마다 실내체육관이 있다. 지역 스포츠 시설과 연계도 잘 돼 있다. 학교 시설이 부족하면 인근 시설을 이용하는데, 이용료는 무료다. 축구·농구·체조·육상·배드민턴 등 다양하게 배운다.

 김나지움 고학년도 일주일에 3~4시간은 반드시 체육 수업을 한다. 고3 올라가면 체육 시간에 자율학습하는 한국 고교와는 다르다. 특히 수영을 강조한다. 수영은 목숨과 직결된 것이란 인식 때문인지 필수로 가르친다. 독일 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수영은 수준급이라고 보면 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자전거 자격증도 딴다. 자격증이 있어야 자전거를 몰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재미있게 자전거를 배울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는 거다. 자전거 자격증 시험 때는 경찰이 와서 도로 통제까지 한다. 축제 분위기다.

 초등학교에선 노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하루 30분씩 긴 쉬는 시간이 두 번 있는데, 학생들은 무조건 운동장으로 나가야 한다. 교실 문을 아예 잠궈 버린다. 독일은 비가 자주 오는데, 비가 와도 무조건 나간다. 비 맞고 노는 거다. 어떤 때는 흙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세림이는 학교에 돌아올 때마다 늘 행복하게 웃었다.

 이런 교육 시스템은 독일 특유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독일은 대학이 평준화돼 있다. 한국처럼 고교교육의 목적이 명문대 진학이 목표가 아니다. 기업도 전공을 중요하게 보지 어느 대학 출신인지 따지지 않는다.


 반면 마스터(장인)가 인정받는 나라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기술만으로도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김나지움에 진학해 아비투어(독일 대학 입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도 대학 대신 직업교육을 택하는 학생도 많이 봤다. 공교육을 살리려면 사회가 함께 변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엄마 정수정(41·한국교육개발원 독일 통신원)씨
정리=정현진 기자
출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18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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